미투데이


러시아 문학의 필독서 - 거장과 마르가리타 by 이스칸달

거장과 마르가리타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나의 점수 : ★★★★★★★★★★★★★★★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고 별을 15개나 주니 오히려 격이 떨어져보이는군요.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니 그냥 두겠습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잘 모르는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모 아가씨의 강력 추천과 현재 수강 중인 러시아 명작의 이해 강사님의
또 한번의 강력한 추천으로 결국 읽게 되었습니다.
소감은...음...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근 2~3년 사이에 읽은 책 중 최고네요.

소련의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의 작품인 이 책은 엄청난 문제작입니다.
작가 불가코프가 노동자의 적, 백위군의하수인, 반동작가 등 욕이란 욕은 다 먹은
소위 '찍힌 작가'인 관계로 생전에 출간되지도 못했고 내용도 소비에트 비판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같은 소비에트 비판인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명백히 우위에 있는 점은 그 의미의 확장성이라 하겠습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비판은 풍자적이고 우화적, 비유적이기에
이는 단순히 소비에트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모든 권력은 인간에 대한 폭력이며, 카이사르들의 권력도,
그 외의 다른 어떤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인간은 그 어떤 권력도 필요 없는 진리와 정의의 왕국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 45)

때문에 이 텍스트는 소련이 망한 지금에 와서도 
독자들에게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를 줄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작금의 한국의 상황과도 어찌나 유사하던지-_-)

1929~1940년 사이에 쓰여진 이 작품은 앞서 서술했듯이
스탈린 체제하에 경직되어가는 소비에트 권력을 비판하고 깔아뭉개는 작품입니다.
다만 솔제니친처럼 소비에트를 비판하기 위해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고골이나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끌벅적, 스펙터클, 진지함, 비장함, 코믹함, 알레고리, 희화화, 불경스러움,
전복성, 환상적, 풍자적, 빈정거림, 숭고함...

이 모든 단어가 이 텍스트를 설명하는데 어울리는 단어들입니다.

--------------------------------------------------------
30년대로 추정되는 모스크바.
모스크바 문학협회 회장 베를리오즈는 시인 베즈돔니에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사시를 쓰라는 의뢰를 했더니,
정말 초라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이고 생동감넘치는 예수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는 어째서 예수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해 열변을 토합니다.
그 때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기묘한 분위기의 신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듭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예수를 목격했다면서 2천년전 빌라도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여전히 신(과 악마)를 부정하는 베를리오즈에게 그는 오늘 저녁에 예정된
문학협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며 여자에게 목이 잘려 죽을 것임을 예언합니다.
콧방귀를 끼던 베를리오즈는 공원을 나서던 길에 철로에서 미끄러져
여자 차장이 모는 전차에 목이 잘려 죽고 말며 베즈돔니는 이를 보고 놀라
이미 저멀리 사라지는 정체 불명의 신사를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

이 신사는 (명백히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에서 영향을 받은) 악마 볼란드입니다.
그리고 그의 하수인으로 검고 덩치큰 대식가 고양이 베헤못♥,
(자칭) 통역관인 체크무늬 옷의 (자칭) 전직 성가대 지휘자 코로비예프,
백내장을 앓는 명사수 아자젤로, 미녀 흡혈귀 헬라가 등장하며,
이들 다섯명은 모스크바에서 잔혹하면서도 익살스럽고 유쾌한 난동을 부립니다.

이들은 모스크바에 만연한 악을 응징하기 위해 찾아온 것인데,
악마가 악행으로 악을 벌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지요.
게다가 악마들은 류머티즘을 앓고 서로 다투는 등
그 신비성과 권위를 버리고 더 없이 인간적으로 다가오며,
악마가 벌하는 대상과 악마 스스로가 모두 희화화되기 때문에 너무나 유쾌합니다.
(...하지만 뒷맛까지 유쾌할지는 직접 읽어보시면 알겠지요^^)

게다가 이들이 활보하는 모스크바는 소설속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생동감이 넘칩니다.
장소 하나하나가 모스크바의 명소들이고 묘사도 세밀하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만을 순방하는 투어 상품마저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 현실의 공간에서 악마들에 의한 초현실적이고 판타지틱한 사건들이
발생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아이러니겠지요.

이 소설은 일종의 외부 텍스트와 내부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외부 텍스트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스크바의 텍스트이고,
내부 텍스트로 예르샬라임(예루살렘)의 본디오 빌라도와 예슈아(예수)의
텍스트가 존재합니다.
이 내부 텍스트는 베즈돔니의 서사시이자, 악마 볼란드의 목격담이자,
후에 등장하는 거장이 쓴 소설이기도 한데,
왁자지껄한 외부 텍스트와는 달리 더없이 진지하고 무거우며 어둡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단순한 액자식 구성이 아닌 것은
이 두 개의 이야기가 정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 섥혀 외부 텍스트와 내부 텍스트가 융합되며,
결국은 서로의 등장인물들이 상대편의 텍스트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텍스트의 융합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기에 몰입감도 있고,
소설적 구성의 측면에서 문학적 의의 역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책 제목인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언제 나올까요?
그것은 역시 직접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19세기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한걸음 더 나아가면 체홉의 희곡이나 고골 등이 떠오르지요.
하지만 20세기에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요로 인해서
많은 작가들이 희생되고 작품들이 천편일률적이 되어버립니다.
그나마 솔제니친 정도가 유명한 작가이지요.
하지만, 현재 러시아에서는 불가코프가 솔제니친보다 훨씬 높이 평가받으며,
20세기 러시아 소설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논쟁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지만) 러시아 명작의 이해 강사님은
'다음 세기까지 남을 거의 유일한 20세기 러시아 소설'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니까요.
저 역시 스스로에게 그렇게나 거대한 고통을 준 소비에트를,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회적 생매장을 당한 작가지요)
이렇게까지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희화화하며 풍자적으로 비판하며
훌륭한 소설을 써낸 작가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네요...

물론 짐작하시다시피 거의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결코 짧은 분량의 소설은 아니지만,
지루하게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소설도 아니고 이 정도는 도전해 보시는 것도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요?

무조건 추천합니다. 정말 재미가 있으면서도 작품의 무게는 육중합니다(...)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보세요^^

※고양이 표지의 김혜란님 번역본을 추천합니다. 번역이 깔끔하고 맛깔납니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iskandar.egloos.com/tb/4749425 [도움말]

핑백

  • 사도바야 거리 302-2 50호 : 2008년 내 이글루 결산 2008-12-30 21:58:12 #

    ... 저리 망상 공간홍대 (3회) / Exhibition, xbtion. 가장 많이 읽힌 글은 노병가 입니다. 가장 대화가 활발했던 글은 러시아 문학의 필독서 - 거장과 마르가리타 입니다. ( 덧글 10개 ) 내이글루에 가장 덧글을 많이 쓴 사람은 rigelh 입니다. ----------------------------- ... more

덧글

  • mattathias 2008/11/25 00:41 # 답글

    이 책은 굉장히 유명합니다. ...이름 안 들어본 문학도는 없을 정도죠.
  • 이스칸달 2008/11/25 00:49 #

    아, 저는 문학에 큰 관심은 없는 한국의 대중들에게의 지명도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비교하기엔 좀 비겁하지만, '죄와벌'이나 '안나 카레니나', '햄릿' 보다는
    일반인들에게 훨씬 덜 알려진 작품이겠지요?
    아니, 최근 유행하는 일본 대중 소설들보다도 훨씬 덜 유명하지 않을까요 :(
  • rigelh 2008/11/25 00:50 # 답글

    리뷰보니까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ㅠㅠ 지금 다시 읽으면 몇년 전에 읽었을 때랑 느낌이 또 다를 것 같아요.
    저의 경우 근 2~3년 사이 읽은 책 중 최고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올 해 읽은 책 중 최고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예요. ^^
  • 이스칸달 2008/11/25 15:22 #

    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아주아주아주아주 좋긴 했지만, 내 취향에서 약간 비껴가는 점이 있어서^^;; 이 책은 여러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맛이 다를 것 같아.
  • 유로스 2008/11/25 09:39 # 답글

    분권 출판된 문예출판사 번역본은 원문의 미묘한 맛을 살리기보다 잘 읽히는 데에 치중해서 좀 아쉽더군요. 의미 전달의 충실함으로 따지면 문지판이 더 나은 듯합니다.
  • 이스칸달 2008/11/25 15:21 #

    아무래도 문지판 번역자 분께서는 불가코프 전공이시라서 세세한 부분에서 원전의 맛을 잘 살리려고 노력하신 것 같더군요.
  • NePHiliM 2008/11/25 11:07 # 답글

    사..살려니까 비싸네 -_- 도서관 가야하나
    -네피
  • 이스칸달 2008/11/25 15:20 #

    에이, 옷 한벌만 안사면 될텐데(...)?
  • cojette 2008/11/25 12:20 # 삭제 답글

    고마워 잘 읽을께 언제 빌려줄려? ( -_-)
  • 이스칸달 2008/11/25 15:21 #

    레포트를 써야하니 학기가 끝나면 빌려드리죠 흐흐;
덧글 입력 영역